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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앤 드라마

최은영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남자의 눈시울도 붉어지는 따뜻한 이야기

by 아브라™ 2021.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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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는 일곱 편의 중단편을 묶은 소설집으로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는 열일곱 여고생 쇼코가 한국의 자매 고등학교를 방문하게 되고 쇼코의 호스트가 된 동갑내기 여고생 소유가 서른 살 어른이 될 때까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소유의 시선에서 담은 중편 소설입니다. 작가의 등단 데뷔작품이기도 하고요.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를 읽는 동안 아, 이렇게 가슴뭉클한 문장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작가의 내공이 놀랍기만 하였습니다. 작가가 궁금하여 책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거기엔 소설보다 더한 절망의 청춘을 살아낸 한 인간 고뇌가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서른 살 여름... 나는 안 되는 걸까...이 년간 여러 공모전에 소설을 투고했지만 당선은커녕 심사평에도 거론되지 못했다. 그해 봄 애써서 썼던 '쇼코의 미소'도 한 공모전 예심에서 미끄러졌다.

 

... 튼튼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매달 갚아야 할 엄연힌 빛이 있었으며 언제나 경제적으로 쫓기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가망도 없는 이 일을 계속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작가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포기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펑펑 울었던 적도 있다. 오래 사랑한 사람을 놓아주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울었다. 

 

가끔 글쓰기에 해이해지고 게을러질 때면 그때 그렇게 울었던 나의 마음을 떠올려보다. 이생에서 진실로 하고 싶었던 일은 이것뿐이었다. 망상이고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쇼코의 미소'에서 소유의 할아버지가 서울 단칸방에서 혼자 사는 손녀딸 소유를 찾아오는 장면이 있는데요. 그때 소유는 영문과를 졸업하고 오르지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그녀에게 영화감독은 허락되지 않은 미래임을 알고 골방에서 두문불출하던 때였지요. 손녀딸이 걱정되어 왔던 할아버지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인생이 멋진 거라는 말을 남겨 두고 비가 억수같이 오는 길을 나서는데 하나뿐인 우산이 제대로 펴지지 않는 거예요.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눈시울을 소리 없이 붉혔는데요. 아, 그것이 작가의 산 경험이었단 걸, 작가의 말을 읽고 저는 또 한 번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네요. 서른 살 즈음은 그럴 때잖아요.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 크기만큼 비례해서 불안하기도 하고 암울하기도 하잖아요. 그 많은 것 중에서 겨우 하나,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했는데, 그렇게 노력하고도 가망 없다는 걸 깨닫는 일은 너무 잔인하잖아요. 그 나이엔 특히나요.

'쇼코의 미소'의 줄거리는 쇼코가 소유의 집에서 일주일간 머물다 일본으로 돌아가고 나서 주고받는 편지 속에서 이어집니다. 일본말을 할 줄 알았던 소유의 할아버지는 쇼코가 한국에 머물 동안 친소녀보다 더 살갑게 대하고 마치 연애편지를 주고받듯 쇼코의 편지를 기다리게 됩니다. 쇼코는 소유에게는 영어로, 할아버지에게는 일본어로 각각 한통씩 편지를 보내옵니다. 

 

소유의 할아버지는 열 살 때부터 일한 정미소에서 평생을 보내다 사기 같은 걸 당해 오십 초반에 정미소 일을 그만두고 난 뒤에는 소파에서만 소일했다고 해요. 여든 살 노인이 될 때까지요. 요즘으로 치면 조기 은퇴를 한 셈인데, 내 처지가 투영되어서인지 소유와 할아버지의 관계, 쇼코와 할아버지의 관계가 빚어내는 드라마의 몰입도도 좋았어요.

 

소유는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었다'라고 회상합니다. 소유와 쇼코는 세 번 만나요. 소유가 대학 때 쇼코를 한 번 찾아가서 만나고, 소유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쇼코가 소유를 만나러 오죠.

 

세 번의 만남은 우리들 인생사와 같이 매번 굴곡이 극에 달해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쇼코가 그렇게 원하던 도쿄의 대학에 가는 걸 포기하고 할아버지 곁에 남았을 때 소유가 찾아가죠. 그리고 소유가 영화감독되기를 포기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쇼코가 소유를 찾아오죠. 쇼코와 소유는 서로 전혀 다른 위치에 선 서로를 통해 인생을 깨달아가며 어른이 되어갑니다. 

 

소설집 말미에 문학평론가 서영채의 '순하고 맑은 서사의 힘'이라는 근사한 해설을 붙여놓았어요. 최은영은 '쇼코의 미소'가 심사위원들에게 '모처럼 만나본, 작가의 진정성과 뜨거운 가슴을 확인할 수 있었던 감독적인 소설이었다는 것((작가 임철우), '진실하다는 느낌을 주고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다는 것(평론가 신형철), '조금은 싱겁다 했는데 어느새 그 담담함에 매료되고 말았다는 것'(작가 하성란), '신인답지 않은 힘은 어떠 새로운 감각의 소설보다 드물고 소중하다'(작가 권여선)는 평까지 소개하고 (심사위원의) 감동적이라는 말은 어떤 작품에 대한 상찬의 말 중에서도 최상급의 표현이라고 해요. 저도 전적으로 동감해요. 

 

'쇼코의 미소'는 최은영 작가 특유의 담담한 여성적인 문체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남성 독자도 울리는 아주 묘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식구들이 눈치챌까 봐 몰래 눈시울을 붉혔던 소유와 쇼코 두 조손가정의 이야기였어요. 이제 작가는 행복한 글을 쓰며 인생을 살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후속 작품도 내놓았으니까요. 저도 블로그에나마 이렇게 글을 쓰며 남은 여생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2018)도 조만간 읽어보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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